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10대 소녀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과감히 던지는 돌직구 소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평범한 중학생 소녀 기유메트의 눈앞에 펼쳐진 삶은 신산하기만 하다. 트럭에 정면으로 들이받힌 몸은 뒤틀리고 삐뚤어졌다. 군데군데 마비되고 굽은 손으로는 이름을 쓰는 것조차 힘겹다. 이렇게 망가진 몸뚱이는 기유메트에게 그저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다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은 분노로 이어졌고, 그 분노가 고장난 뇌를 거치는 순간 기유메트의 입에서는 어김없이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에이…씨, 귀찮아 죽겠네. 꺼져 버려! 귀찮게 하지 말고!”
“아 씨, 그런 병신 같은 말 따위….”
“…즐거움? 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던 기유메트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리고 찰나의 시(詩), 하이쿠가 기유메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사고만큼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꽤나 강렬했다. 사랑에 빠진 기유메트는 하이쿠에 자신의 마음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담으며 서서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지만 여전히 녹록치 않은 상황들이 장애물처럼 기유메트 앞에 펼쳐지는데…….
≪목발 짚은 하이진≫은 ‘장애공감 1318 시리즈’의 열세 번째 책으로, 사고로 장애를 입은 10대 소녀가 겪을 수 있는 직접적인 문제들과 극복 과정을 현실감 있게 그려 낸 청소년 소설이다. 작품을 읽는 동안 시나브로 이야기에 녹아들 수 있는 것은 ‘장애’라는 다소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담담한 어투로, 현실적으로 풀어내어 독자들의 깊은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까닭이다.
저자 : 쥬느비에브 튀를레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는 작가이다. 어린 시절에 직접 듣거나 경험한 기억과 감정들을 책에 담아내고 있으며,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그림 : 발레리 부아예
파리 장식예술학교를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인, 가구 디자인, 영상 예술 등의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텍스트를 시적이고,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풀어내는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역자 : 박언주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좋은 책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프랑스 논리 선생님 베르나르의 어린이 논리 퀴즈》 《왜?로 시작하는 어린이 인문학》 《일상에서 철학하기》 《사랑하는 나의 세 어머니》 《상상력 먹고 이야기 똥 싸기》 《자두치킨》 등이 있다.
하늘이 끌어
내 몸이 추락하네
물웅덩이로
바람을 따라
태양을 따라 쫓네
꿈의 구름을
무거운 안개
세상을 비워 내면
삶이 채우네
창에 서린 김
손가락이 가르네
빛과 공허를
잿빛 안개가
먹물의 냉기 숨겨
밤을 붙드네
저 아래 강가
골짜기 채운 안개
길을 감추네
짙은 수평선
희미한 하얀 빛이
고개를 드네
하늘 젖히고
황금 보인 짓궂은
찰나의 바람
느릿한 일출
붉은 빛의 하늘을
흩어 버리네
쓰는 그 순간
소리 없이 부서진
시간 한 조각
슬픈 하늘에
희망의 색 뿌리는
무지개 하나
새 봄을 쫓는
희미한 그림자들
그리고 태양
내 눈 한 켠에
그늘 드리운 공범
작은 참새여
비 품은 바람
그 외침 속 춤추는
무거운 구름
이것은 내가 맨 처음으로 쓴 ‘하이쿠’다. 그 뒤로도 수많은 하이쿠를 썼다. 하지만 이 첫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누구는 ‘하이쿠’라고 하고, 누구는 ‘하이카이’라는데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하이쿠는 하이카이에서 시작된 것이니까. 어쨌든 나는 하이쿠라고 말하는 게 더 좋다. 이 단어가 더 부드럽기 때문이다. 하이카이가 두려움에 차서 내지르는 고함처럼 느껴진다면, 하이쿠는 마치 약간 긴장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들이마시는 숨 같달까? 글을 쓰면서 들이마시는 이런 숨은 맛깔나다.
하이쿠를 이루는 열일곱 개의 음절은 돌차기 놀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내딛는 열일곱 번의 작은 발걸음과 비슷하다. 돌차기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은 자신이 가려고 하는 하늘이 진짜가 아니라, 땅바닥에 그려 놓은 가짜 하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긴장한다. 그런데 심지어 자신의 다리가 휘었다는 것을 안다면 아무리 그 하늘이 가짜라고 해도 아마 거기까지 이르지 못할 것이다.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까지 갔다가 땅으로 다시 되돌아오면 결국 중요한 것은 휘고 구부러진 몸뚱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몸이다. 길과 숨의 리듬이 만들어 낸 몸 말이다....이것은 내가 맨 처음으로 쓴 ‘하이쿠’다. 그 뒤로도 수많은 하이쿠를 썼다. 하지만 이 첫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누구는 ‘하이쿠’라고 하고, 누구는 ‘하이카이’라는데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하이쿠는 하이카이에서 시작된 것이니까. 어쨌든 나는 하이쿠라고 말하는 게 더 좋다. 이 단어가 더 부드럽기 때문이다. 하이카이가 두려움에 차서 내지르는 고함처럼 느껴진다면, 하이쿠는 마치 약간 긴장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들이마시는 숨 같달까? 글을 쓰면서 들이마시는 이런 숨은 맛깔나다.
하이쿠를 이루는 열일곱 개의 음절은 돌차기 놀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내딛는 열일곱 번의 작은 발걸음과 비슷하다. 돌차기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은 자신이 가려고 하는 하늘이 진짜가 아니라, 땅바닥에 그려 놓은 가짜 하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긴장한다. 그런데 심지어 자신의 다리가 휘었다는 것을 안다면 아무리 그 하늘이 가짜라고 해도 아마 거기까지 이르지 못할 것이다.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까지 갔다가 땅으로 다시 되돌아오면 결국 중요한 것은 휘고 구부러진 몸뚱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몸이다. 길과 숨의 리듬이 만들어 낸 몸 말이다.
하이쿠를 하나씩 쓸 때마다 나는 내 몸을 조금씩 고쳐 간다. 그 덕분에 지금, 나는 살아 있다.
p.9~10
나에게 그 사고는 엄청나게 강한 어떤 진동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누군가 나를 만지고, 말을 걸었다. 주변에는 가느다란 호스 같은 것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새하얀 불빛 하나. 얼마 동안인지는 몰라도 꽤 오랜 시간 나는 해파리 같은 연체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어루만졌다. 엄마였다. 튜브 바로 옆에 놓인 팔 위로 부드러운 무언가가 살짝 스쳤다. 아빠였다.
입속에 넣어 놓은 튜브 때문에 내 목소리가 희미했다. 보이는 것이라곤 하얀 빛과 침대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뿐이었다. 두 귀에는 사람들이 낮게 웅성거리는 소리와 윙윙거리는 기계음만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메트!” 처음에는 끄트머리만 어렴풋하게 들렸다. 그러다 차츰 내 이름이 온전히 귀에 닿았다.
“기유메트, 기유메트, 기유메트!”
하지만 그 소리는 무척 멀었다.
사람들이 서둘러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무겁고, 아득하고, 느렸다. 그 사람들과 나,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시간에 살고 있지만, 속도가 다른 두 개의 세계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것은 편안하지도, 힘들지도, 고통스럽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나는 풀 한 포기, 흐느적거리는 한 마리의 연체동물, 현미경 렌즈 아래의 한 마리 단세포 생물이었다. 나는 그저 살아 있을 뿐이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은 아주 강렬해서 오로지 그것만 인식할 수 있었다.
p.22~23
--- 본문 중에서
★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한울림스페셜 ≪장애공감 1318≫ 시리즈의 13번째 책
뜻하지 않은 충돌사고로 온몸이 마비되고 삐뚤어진
사춘기 소녀의 ‘이유 있는’ 반항
목발 짚은 소녀,
온몸에 꾹꾹 새겨진 장애 앞에서 사랑을 맛보다
10대. 한없이 푸르고 한없이 위태로운 시절이다. 조금만 날을 세워도 ‘중2병’ 정도로 치부당하고야 마는. 안 그래도 사는 게 복잡한 중학생인데, 어느 날 갑자기 정면으로 트럭에 치여 온몸이 마비된다면?
≪목발 짚은 하이진≫의 주인공 기유메트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하루아침에 ‘여느 중학생’에서 ‘장애인’이 된 것이다. 교통사고로 뇌를 비롯한 전신에 손상을 입은 기유메트는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조차 힘겹다. 과거에 배운 것들, 특히 글쓰기에 관해서라면 깡그리 잊어버렸다. 그렇게 아끼던 바이올린과 함께 평범한 여중생의 삶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더 이상 건강한 몸으로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두려움은 분노로 이어졌고, 분노는 입을 통해 욕과 악다구니로 표출되었다. 냉소적인 빈정거림과 가시돋힌 욕설은 기유메트가 울부짖는 방식이었다.
충돌 사고 때문에 내 말의 경계가 무너져 내렸고, 머릿속 생각들은 말과 하나가 되어 걸러지지 않은 채 흘러나왔다. 상스러운 욕지거리는 나의 몸을 벌거벗겼고,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드러난 나의 몸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14p)
오직 텅 빈 구멍만이 나의 아픔을 먹고 자라며 나를 몸이 뒤틀린 괴물로 만들어 놓았다. 짐승처럼 울부짖고 싶어 하는 괴물. (18~19p)
그러는 게 당연했다. 성적, 친구, 학교, 연애, 진로 등 멀쩡한 몸으로도 버거울 사춘기를 삐뚤어진 몸으로 살아내야 했으니 말이다. 이제 기유메트는 비장애인 친구들이 겪는 문제들에서 더 나아가 훼손된 신체에 대한 거부감을 이겨 내고, 불편한 몸으로 2차 성징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투명 인간 취급하거나 불편해하는 타인들의 시선을 견디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을 감수해야 한다. 다시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고, 앞으로 펼쳐질 삶의 막막함도 부둥켜안아야 한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들어갔지만, 재활 센터의 생활은 낯설기만 하다. 자신처럼 목발을 집거나 휠체어를 탄 아이들, 신체적 장애와 더불어 지적 장애까지 가진 아이들 속에서...★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한울림스페셜 ≪장애공감 1318≫ 시리즈의 13번째 책
뜻하지 않은 충돌사고로 온몸이 마비되고 삐뚤어진
사춘기 소녀의 ‘이유 있는’ 반항
목발 짚은 소녀,
온몸에 꾹꾹 새겨진 장애 앞에서 사랑을 맛보다
10대. 한없이 푸르고 한없이 위태로운 시절이다. 조금만 날을 세워도 ‘중2병’ 정도로 치부당하고야 마는. 안 그래도 사는 게 복잡한 중학생인데, 어느 날 갑자기 정면으로 트럭에 치여 온몸이 마비된다면?
≪목발 짚은 하이진≫의 주인공 기유메트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하루아침에 ‘여느 중학생’에서 ‘장애인’이 된 것이다. 교통사고로 뇌를 비롯한 전신에 손상을 입은 기유메트는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조차 힘겹다. 과거에 배운 것들, 특히 글쓰기에 관해서라면 깡그리 잊어버렸다. 그렇게 아끼던 바이올린과 함께 평범한 여중생의 삶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더 이상 건강한 몸으로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두려움은 분노로 이어졌고, 분노는 입을 통해 욕과 악다구니로 표출되었다. 냉소적인 빈정거림과 가시돋힌 욕설은 기유메트가 울부짖는 방식이었다.
충돌 사고 때문에 내 말의 경계가 무너져 내렸고, 머릿속 생각들은 말과 하나가 되어 걸러지지 않은 채 흘러나왔다. 상스러운 욕지거리는 나의 몸을 벌거벗겼고,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드러난 나의 몸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14p)
오직 텅 빈 구멍만이 나의 아픔을 먹고 자라며 나를 몸이 뒤틀린 괴물로 만들어 놓았다. 짐승처럼 울부짖고 싶어 하는 괴물. (18~19p)
그러는 게 당연했다. 성적, 친구, 학교, 연애, 진로 등 멀쩡한 몸으로도 버거울 사춘기를 삐뚤어진 몸으로 살아내야 했으니 말이다. 이제 기유메트는 비장애인 친구들이 겪는 문제들에서 더 나아가 훼손된 신체에 대한 거부감을 이겨 내고, 불편한 몸으로 2차 성징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투명 인간 취급하거나 불편해하는 타인들의 시선을 견디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을 감수해야 한다. 다시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고, 앞으로 펼쳐질 삶의 막막함도 부둥켜안아야 한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들어갔지만, 재활 센터의 생활은 낯설기만 하다. 자신처럼 목발을 집거나 휠체어를 탄 아이들, 신체적 장애와 더불어 지적 장애까지 가진 아이들 속에서 살아야 하다니, 끔찍하다.
그러나 아프고 부대끼는 삶 속에서도 행복과 희망은 묵묵히 피어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남동생들의 따뜻한 보살핌, 예술 학교의 친구들과 비에너 선생님, 물리 치료사인 세브 아저씨와 프랑스 어 선생님인 맨슨 선생님과의 관계 그리고 기욤과의 사랑. 그 속에서 기유메트의 몸과 마음은 점차 안정을 찾아 가고,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도 얻게 된다. 기유메트는 재활 센터에서 만난 기욤을 좋아하면서도 처음에는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한다. 실제로 대다수의 장애인들에게 사랑과 연애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망설임, 자격지심, 경제적 문제, 사회적 인식 등 그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기유메트 역시 사고로 망가지고, 고장 나고, 삐뚤어진 장애인의 몸으로는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윽고 사랑 앞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부자연스러운 몸이나 목발, 휠체어는 장애물이 아닌, 자신과 서로를 이해하는 매개체가 된다.
어느 구석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몸뚱이. 이런 몸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 겨우 내 몸을 다시 조립하기 위한 공구 상자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살고 있다. (20p)
“가슴이 커지는 걸 또 다른 장애로 치부해 버리지는 마. 오히려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너의 몸과 함께 살아간다는 즐거움 말이야.” (54p)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 애를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102p)
숨 한 번의 길이만큼의 시(詩) 하이쿠 열일곱 자에
‘진짜 나’를 마주할 용기를 담다
하이쿠는 5?7?5의 열일곱 자로 된, 일본의 정형시이다. 이렇게 짧아서 ‘숨 한 번의 길이만큼의 시’라고 불린다. 하이쿠를 짓는 이들을 하이진이라고 한다. 하이쿠에는 자연과 계절, 삶, 인간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서 순간적으로 얻은 깨달음이 숨겨져 있다. 그 속에 감춰진 것을 찾아내는 일은 고스란히 독자의 몫이다.
하이쿠에 대한 정의가 곧 이 책의 제목이 ≪목발 짚은 하이진≫인 이유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할 용기, 타인의 시선을 받아들일 용기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려는 용기. 이 모든 용기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목발을 짚게 된 기유메트가 하이쿠를 쓰면서 깨닫고 얻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이쿠의 매력에 빠져 있는 작가는 매 장의 제목을 하이쿠로 대신했다. 내용을 함축하여 정해진 형식에 맞춰 하이쿠를 짓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 또한 녹록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나의 시, 하이쿠를 매개로 주인공의 심리와 감정을 대변하여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하이쿠를 하나씩 쓸 때마다 나는 내 몸을 조금씩 고쳐 간다. 그 덕분에 지금, 나는 살아 있다. (10p)
나는 지난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의 내 삶을 좀 더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하이쿠를 써야만 했다. (44p)
흐르는 시간을 핀으로 꽂아 고정시키는 것. (중략) 그저 그 순간을 숨 한 번 쉴 동안만 그대로 고정시켜 놓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20p)
또한 작가는 장애 학생이 실제로 겪을 수 있는 문제와 고민들을 비껴가는 대신 과감히 끄집어내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비극적으로 묘사하거나 독자의 눈물을 억지로 짜내기보다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불안한 미래 사이에서 부대끼는 장애 청소년의 심리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사고 이후 생활의 변화와 그 극복 과정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통해 독자들은 장애와 장애인, 특히 장애 청소년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고민들을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